현지화혁신으로 글로벌 시장 휘젓는 ‘가전 빅2’[중앙일보]
2010.09.09 00:17 입력 / 2010.09.09 00:17 수정
생산 시스템 혁신 … 5개월 만에 물량 3배로
한국 가전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국산 TV·냉장고·세탁기 등은 세계 곳곳에서 1위다. 비결은 ‘혁신’과 ‘현지화’다. 삼성전자의 유럽 시장 공략 전초기지가 된 폴란드 브롱키 공장과, 인도네시아 국민 브랜드가 된 LG전자 인도네시아 법인을 가 봤다.
8일(현지시간)까지 엿새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IFA) 2010’. 이곳에서 만난 홍창완 삼성전자 부사장(생활가전사업부장)은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TV와 휴대전화는 별도의 홀을 단독으로 임차해왔고 생활가전 제품은 전시장 밖의 ‘야외 천막홀’ 신세였는데, 이번에 처음 건물 안에 들어왔어요.” 삼성전자가 이번 생활가전 전시장에 쏟아부은 부스 임차료 등 전시 부대비용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이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시장이 유럽이다. 미국과 함께 최대 시장인 데다, 백색가전의 원조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 유럽시장에서 생활가전 1위에 오르기 위한 전초기지는 폴란드 브롱키 공장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여 동쪽으로 달리자 파란색의 삼성전자 영문 로고가 돋보이는 이 공장을 만날 수 있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380㎞ 떨어진 곳이다. 지난해 12월 폴란드 현지 가전업체 아미카에 7600만 달러(약 900억원)를 주고 브랜드를 제외한 자산만 인수했다. 지난 4월 SEPM(Samsung Electronics Poland Manufacturing)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곧바로 유럽에 팔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대지 21만5000㎡에 건평 7만2600㎡라 추가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여유 부지가 8만9000㎡에 달한다.
인수 후 냉장고 2개 라인과 세탁기 1개 라인의 정비에 들어갔다. SEPM 김득근 법인장은 “냉장고와 세탁기의 연간 생산량이 각각 50만 대 정도지만, 2013년까지 각각 200만 대 규모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수 이후 비효율적인 공간을 정리하고 설비를 보완해 생산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또 아미카 공장에 부품을 공급한 220여 협력업체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삼성만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자 공장 재가동 후 다섯 달 만에 생산물량을 3배까지 늘릴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올 상반기 유럽시장에서 냉장고는 8.3%의 시장점유율로 간신히 1위를 차지했다. 세탁기는 2.9%다. 김 법인장은 “냉장고와 세탁기를 각각 200만 대 공급하게 되는 2013년에는 점유율 13~14%선, 2015년에는 20%대로 명실상부한 1위가 되겠다”고 말했다.

현지 생산기지의 장점은 물류비용·기간을 줄이고 무역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유럽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 짧아야 두 달 이상 걸렸는데 지금은 1주일이면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최지성 사장은 2005년 윤종용 당시 부회장을 수행해 폴란드 아미카 공장에 온 적이 있었다. 최 사장은 “제품의 덩치가 큰 생활가전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큰 시장과 근접한 곳에서 생산을 해야 한다고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620여 명으로 시작한 SEPM은 879명을 더 뽑아 인력이 1500여 명에 달한다. 2013년에는 3000여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유럽 시장에서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10억 달러의 매출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홍 부사장은 “유럽 생산 물량이 현지 주문량을 다 대지 못하는 상황이라 현지 공급량을 확대하려면 브롱키 공장 인수에 들어간 돈만큼의 시설·인적투자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브롱키(폴란드)=심재우 기자
현지 맞춤형 제품 … 모기 쫓는 에어컨 대박
지난달 하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최고급 쇼핑몰인 원 퍼시픽 플레이스의 5층 베스트뎅키 매장. 가전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이곳에서 가장 좋은 진열 장소인 ‘핫 스폿(hot spot)’의 대부분은 LG전자 제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인도네시아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의 샤프, 소니, 파나소닉 등은 매장 직원에게 물어봐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매장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어느 회사 제품이든 가장 잘 팔리는 것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인구 2억5000만 명의 동남아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를 LG전자가 석권했다. LG전자는 현재 PDP·LCD TV, 모니터, 홈 시어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9개 품목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비결은 현지인도 놀라는 ‘현지화’였다.
대표적인 것이 뎅기모기 퇴치 기능을 적용한 에어컨. 동남아 풍토병인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를 물리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2009년 출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지 중상류층은 일반 에어컨보다 40~50% 비싼 가격에도 앞다퉈 구매했다. 신준재 부장은 “2년반에 걸쳐 IBP대학 농과대학과 공동 연구를 통해 초음파를 내서 모기를 내쫓거나 모기가 사람 다리에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을 개발했다”면서 “상류층 사이에선 며느리나 딸이 임신하면 사주는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LG전자가 2008년에 내놓은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 에어컨’도 히트를 쳤다. AI 환자가 많은 현지 상황을 감안해 에어컨에 AI 바이러스 살균 기능을 추가한 것이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7월 현재 LG전자는 가정용 에어컨시장에서 파나소닉(24%)을 따돌리고 1위(32.6%)를 지키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팔리고 있는 홈시어터 제품 2개 중 1개는 LG전자 제품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터가 된 가전제품 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한 회사가 차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LG전자는 현지인들의 생활습관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가옥구조에 잘 어울리는 모델을 찾기 위해 매주 가정방문을 했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현지인들이 중저음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과 중산층 가옥의 거실이 좁고 천장이 높다는 것. 이후 LG전자는 깨끗한 음 대신 중저음을 보강하고, 가옥구조에 맞는 축소형 제품을 내놓았다. ‘당둣(dangdut)’이라는 인도네시아 대중 음악 장르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맞춤형 홈시어터는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김용권 부장은 “글로벌 기준으로 개발된 모델이 인도네시아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 것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인도네시아에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현지의 연구기관들과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현지 사정을 꿰뚫고 있는 현지인들을 뽑아 간부로 키우는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김원대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 니즈(needs)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해 가고 있다”면서 “한국 국적의 기업이지만 철저히 현지화된 기업이 되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상렬 기자
한국 가전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국산 TV·냉장고·세탁기 등은 세계 곳곳에서 1위다. 비결은 ‘혁신’과 ‘현지화’다. 삼성전자의 유럽 시장 공략 전초기지가 된 폴란드 브롱키 공장과, 인도네시아 국민 브랜드가 된 LG전자 인도네시아 법인을 가 봤다.
폴란드 브롱키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SEPM 법인 근로자들이 7∼9㎏ 용량의 드럼세탁기를 만들고 있다. 이 나라의 전체 실업률은 12%지만 이 고장 실업률은 9%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삼성전자 제공] | |
그렇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시장이 유럽이다. 미국과 함께 최대 시장인 데다, 백색가전의 원조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 유럽시장에서 생활가전 1위에 오르기 위한 전초기지는 폴란드 브롱키 공장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여 동쪽으로 달리자 파란색의 삼성전자 영문 로고가 돋보이는 이 공장을 만날 수 있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380㎞ 떨어진 곳이다. 지난해 12월 폴란드 현지 가전업체 아미카에 7600만 달러(약 900억원)를 주고 브랜드를 제외한 자산만 인수했다. 지난 4월 SEPM(Samsung Electronics Poland Manufacturing)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곧바로 유럽에 팔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대지 21만5000㎡에 건평 7만2600㎡라 추가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여유 부지가 8만9000㎡에 달한다.
인수 후 냉장고 2개 라인과 세탁기 1개 라인의 정비에 들어갔다. SEPM 김득근 법인장은 “냉장고와 세탁기의 연간 생산량이 각각 50만 대 정도지만, 2013년까지 각각 200만 대 규모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수 이후 비효율적인 공간을 정리하고 설비를 보완해 생산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또 아미카 공장에 부품을 공급한 220여 협력업체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삼성만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자 공장 재가동 후 다섯 달 만에 생산물량을 3배까지 늘릴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올 상반기 유럽시장에서 냉장고는 8.3%의 시장점유율로 간신히 1위를 차지했다. 세탁기는 2.9%다. 김 법인장은 “냉장고와 세탁기를 각각 200만 대 공급하게 되는 2013년에는 점유율 13~14%선, 2015년에는 20%대로 명실상부한 1위가 되겠다”고 말했다.
현지 생산기지의 장점은 물류비용·기간을 줄이고 무역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유럽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 짧아야 두 달 이상 걸렸는데 지금은 1주일이면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최지성 사장은 2005년 윤종용 당시 부회장을 수행해 폴란드 아미카 공장에 온 적이 있었다. 최 사장은 “제품의 덩치가 큰 생활가전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큰 시장과 근접한 곳에서 생산을 해야 한다고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620여 명으로 시작한 SEPM은 879명을 더 뽑아 인력이 1500여 명에 달한다. 2013년에는 3000여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유럽 시장에서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10억 달러의 매출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홍 부사장은 “유럽 생산 물량이 현지 주문량을 다 대지 못하는 상황이라 현지 공급량을 확대하려면 브롱키 공장 인수에 들어간 돈만큼의 시설·인적투자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브롱키(폴란드)=심재우 기자
현지 맞춤형 제품 … 모기 쫓는 에어컨 대박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외곽의 탕그랑에 있는 LG전자 공장 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LG전자는 2006년, 2007년, 2009년 인도네시아 최고 투자 외국기업상을 수상했다. [LG전자 제공] | |
대표적인 것이 뎅기모기 퇴치 기능을 적용한 에어컨. 동남아 풍토병인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를 물리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2009년 출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지 중상류층은 일반 에어컨보다 40~50% 비싼 가격에도 앞다퉈 구매했다. 신준재 부장은 “2년반에 걸쳐 IBP대학 농과대학과 공동 연구를 통해 초음파를 내서 모기를 내쫓거나 모기가 사람 다리에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을 개발했다”면서 “상류층 사이에선 며느리나 딸이 임신하면 사주는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LG전자가 2008년에 내놓은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 에어컨’도 히트를 쳤다. AI 환자가 많은 현지 상황을 감안해 에어컨에 AI 바이러스 살균 기능을 추가한 것이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7월 현재 LG전자는 가정용 에어컨시장에서 파나소닉(24%)을 따돌리고 1위(32.6%)를 지키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팔리고 있는 홈시어터 제품 2개 중 1개는 LG전자 제품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터가 된 가전제품 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한 회사가 차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LG전자는 현지인들의 생활습관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가옥구조에 잘 어울리는 모델을 찾기 위해 매주 가정방문을 했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현지인들이 중저음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과 중산층 가옥의 거실이 좁고 천장이 높다는 것. 이후 LG전자는 깨끗한 음 대신 중저음을 보강하고, 가옥구조에 맞는 축소형 제품을 내놓았다. ‘당둣(dangdut)’이라는 인도네시아 대중 음악 장르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맞춤형 홈시어터는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김용권 부장은 “글로벌 기준으로 개발된 모델이 인도네시아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 것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인도네시아에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현지의 연구기관들과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현지 사정을 꿰뚫고 있는 현지인들을 뽑아 간부로 키우는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김원대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 니즈(needs)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해 가고 있다”면서 “한국 국적의 기업이지만 철저히 현지화된 기업이 되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상렬 기자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