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 2010

study and life in africa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9)
 
  
 

9. 백신

오늘도 볼거리로 볼이 탱탱 부은 아이 한 명이 클리닉을 방문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볼거리나 홍역 같은 바이러스 감염성 질환들이 여전히 흔한 질병이지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찾아보기 힘든 질병이 되었다. 어릴적 맞는 엠엠아르(MMR) 백신 때문이다. 홍역과 볼거리, 풍진을 한 번에 예방하는 백신 접종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생후 15개월 뒤면 면역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스와질랜드에서도 MMR 백신이나 소아마비 백신은 유소아 필수 접종 내역에 들어 있지만,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기 힘든 사람들도 많고 더러 병원에 아예 백신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때도 있어 접종률이 높은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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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와 결핵 관련 홍보 책자들. 클리닉에 책자는 쌓여 있지만 적극적인 홍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널리 퍼진 과학만능주의…

지금 우리 문제는 과학이 부족해서?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의학이나 약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 주었다. 항생제와 백신은 감염성 질환으로부터 인간을 효과적으로 보호해주었고 공중보건의 발전은 쾌적한 삶을 제공해주었다. 다른 여러 과학기술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무기들이 개발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 독감백신이 개발되기 이전인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집 앞에 누군가 침을 뱉고 가면 침 위에 끓는 물을 가져다 부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감염성 질환은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행성 전염병(pandemic)이 일어나더라도 백신 접종으로 독감 감염을 손쉽게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의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경험한 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는 빈곤문제나 소외열대질환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을 맹신하게 되면서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바로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은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는 데 다양한 해결책 중 하나를 제시해 줄 수 있지만, 과학 자체가 모든 것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과학만능주의는 많은 엔지오(NGO)들과 연구단체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게이츠재단도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소외열대질환 연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이츠재단의 행보를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 이러한 빈곤과 질병 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매년 새로운 백신, 진단기술, 약품의 개발에 막대한 자본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과학기술 발전 그 자체의 문제일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부족해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이전 글(“게이츠재단, 열대질환 연구판도 바꾸다…기여와 한계”) 말미에서 던졌던 분배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천연두 백신의 신화, 과학의 신화

질병과 싸운 사람들의 노고는 빠져 있는…

기초연구는 분명 중요하다. 질병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여 이후 더 나은 치료법과 더 효과적인 예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열대질환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효과적인 치료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즉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이들에게 충분히 분배되지 못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이것이 바로 ‘소외’열대질환의 문제다. 질병 자체가 소외받고 있다는 것. 지금 이러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가장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열대를 여행하다 운 나쁘게 소외열대질환에 감염되었던 부유한 여행자나, 이러한 연구들을 국제 학술 잡지에 발표하는 몇몇 연구자들이다.
정작 이 기술이 가장 필요한 빈곤지역에서는 평생 기생충약 한번 구경해보지 못한 사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결핵균이 약물저항성을 획득해 더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 제때 말라리아 진단을 받지 못해 치료조차 해보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기생충약은 한 번 씹어 먹는 것으로 충분한 약이 얼마든지 개발되어 있고, 이미 오랜 시간 사용되어 그 효과를 입증한 결핵약도 다수 존재하며, 피 몇방울로 어떤 종류의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진단키트도 존재한다.
이렇게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많은 NGO들은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여기에 굉장히 많은 자본을 투자한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 연구된 결과물들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여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다. 백신이나 치료제들의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다.
천연두의 예를 들어보자. 천연두는 인간이 박멸한 최초의 질환이다. 제너의 종두법 이래로 오랜 동안 연구되고 개발된 천연두 백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천연두 박멸의 공은 고스란히 백신의 덕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천연두 박멸이 과연 백신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천연두 박멸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총괄했던 사람의 강연 내용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천연두 감염자 확인과 접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5만명의 지역 보건원들이 10억번 이상의 가정방문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지역 보건원들은 천연두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인도 구석구석 한 가정도 빠짐없이 방문하며 감염자를 확인하고, 접촉한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일을 계속했다. 이런 노력과 열정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바로 천연두 박멸이다.

사람을 이해하지 않은 채

과학만을 내세우는 건 또다른 억압

현재로 눈을 돌려보자. 이제 이런 상황은 비단 제3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MMR 백신, 나아가 백신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1998년 백신과 자폐증 논란에서 촉발된 이 불안감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백신 접종을 늦추거나 거부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이 영향이 특히 심했던 영국의 경우에는 수십년 만에 홍역 환자가 최고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올해 1998년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실렸던 백신과 자폐증 관련 논문의 게제가 취소되었지만, 백신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로 돌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는 쉬운 해답이며 자신들에 소통의 문제가 있음을 회피하는 답변이다. 과학교육이 부실해서 그렇다고 얘기한다면, 이는 사람들이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사회문화적 요소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의 인문학적 교육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학교육 부족이라는 비판과 마찬가지로 인문학적 교육 부족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과학교육이 부족해서 그렇다, 혹은 사람들이 질병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 그렇다는 비판은 어디서나 나온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에 비하면 굉장히 미미하다. 국제의료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스케쥴에 맞춰 대낮에 마을을 방문해 에이즈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는 아주머니 네 분 밖에 오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의 관심은 높다. 하지만 잠깐 교육을 위해 하루 생업을 저버리고 멀리 찾아 오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어처구니 없는 요구다. 교육 내용과 책자 내용에는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사람들이 이 교육과 책자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이처럼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과연 우리들의 접근법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잘 없다.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과학적 사실만 들이대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강요와 개발, 발전이 얼마만큼 지역 사회와 문화에 파괴적인 영향을 가져왔는지는 이미 이전 글들에서 여러차례 지적한 바 있다. 질병에 대항하는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과학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다양성을 단순히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식민지 노예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도구로 단순화해 보던 제국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위해 연구했던가?

연구를 위해 연구했던가?

내 석사 논문의 주제는 수면병에 관한 것이었다. 수면병을 일으키는 파동편모충이 어떻게 단백질 외피를 갈아 입으며 숙주의 면역계를 회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을 유전자 단계에서 알아보는 연구였다. 하지만 연구가 끝날때까지도 이 연구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과연 내 연구가 소외열대질환과 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연구를 위한 연구였던 것인지 지금도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 이러한 고민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소외열대질환 연구자들도 품고 있는 의문이다. 이런 기초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지만, 여기서 성과를 내는 것은 정말 한 줌에 불과하다. 이 돈이 실제 현장에 투자되어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사용되었다면 미래에 이 기초연구를 바탕으로한 결과물로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생충에 대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이해를 넓히는 일은 앞으로 나타날 약물 저항성 기생충이나 새로운 기생충에 대항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연구가 과연 현실과 얼마만큼 접목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 연구의 결실을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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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과 사랑에 빠지다”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 기생충학 석사. 현재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의료봉사 중. 과학 블로거 byontae 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http://byontae.tumblr.com). / 트위터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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